잘 알려지지 않은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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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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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가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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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고구려가 실수해서 침공한 게 아니다


 고구려는 전혀 상관 없이 일어난 일이다. 

먼저 수나라가 왜 고구려를 침공했는지부터 보자.


1. 수는 왜 고구려한테 집착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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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면적으로 봤을 때 고수전쟁의 개전 원인은 영양왕의 선빵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수문제는 어차피 침공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가 때린 것이다.


1. 주수교체기는 중국사 통틀어 날로 먹은 업적임.  우문태가 관중본위정책 펼칠 때 단결력이 엄청나서 막상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지 않았음(이는 동위 고환의 지속적인 공격이 결정적). 

2. 양견에 의해 우문씨 자손이 거의 멸종함. 


 또 양견이 무천진에서 출발한 군벌은 맞는데 당초 그 가문은 높지 않았고 운빨도 꽤 작용했음. 그렇기에 등극 이후 의심이 많아졌다. 실제로 양견은 관롱집단의 단결을 파괴하려고 했으며 위지형, 사마소난, 왕겸 등등은 양견한테 반발했음.


 심지어 건국공신인 이덕림도 우문씨 일족을 주살한 것은 잘못이 맞다고 강력하게 비판함.

양견 본인이 저렇게 럭키하게 얻었으니 다른 놈들이라고 못할 것도 없다. 그래서 양견은 남북조 기준으로 봐도 수많은 전쟁 프로젝트를 추진했음. 


 즉 주수혁명의 결과로 "사취천하"라는 정통성 시비를 무력 행위로 극복하려고 했으며 어느 정도 성과가 난다.


 수서를 보면 "임금은 성심을 다하여 일 개월을 넘기지 않고 삼변을 이겨서 평정하고 십 년이 되지 않아 사해를 평정하여 하나로 하였다"


 그런데 고구려는 양견한테 빌빌 거리지 않았음.

당시인들의 표현을 쓰면 "고구려는 기자가 봉함을 받은 땅으로 한과 진나라 시기 모두 우리의 군현이 아니던가" <= 이거임.


 애초에 영양왕이 선빵 날리기 전부터 수나라와 관계는 씹창났고, 이미 수나라 내부에서 다른 놈들 다 잡았는데 고구려는 왜 우리 따까리 짓 안 함? 이런 포지션이라 고구려가 아무리 똥꼬쇼해도 수는 침공했음. 


2. 수양제의 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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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양제가 아버지 죽이고 이런 막장 기록들은 걸러 들을 필요가 있음., 수서 자체가 당나라 입맛이 반영됨.

그렇지만 그거랑 별개로 수문제의 의심병과 독고 황후가 만만한 인물이 아니기에 뒤숭숭하게 즉위한 거 같기는 함.


 수양제는 스스로 재주와 학식을 뽐내어 교만했다고 하는데 이건 실제로 교만보다는 본인 권위 올려서 정통성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보임.


 이러니 저러니해도 수양제 입장에서 가장 좋은 선택지는 고구려 정벌이라고 할 수 있음.

왜냐면 고구려를 무너트리면 아버지 수문제가 못한 걸 본인이 성공한 거니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지.


 수양제 입장에서는 고구려 잡기만 하면 게임 끝이니깐 실제로 엄청난 대군을 징병해서 고구려를 여러 번 쳤다.  수나라 병력 100만은 논란이 있지만 행여나 100만이 아니라고 쳐도 100만이라는 단어가 언급됐다는 점은, 그 병력이 대규모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임. 


 그런데 수양제가 생각 못한 게 하나 있었는데 고구려가 너무 잘 싸운 거임.

그래서 역으로 수양제가 관광 타고 본문 주제 당이 나온다.


3. 당태종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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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태종 침략에 관해서 영류왕 잘못이네, 개소문 잘못이네라고 갈림.
표면적으로 당태종의 침략 논리는 왕을 죽였고 원래 요동은 우리의 땅임 <= 이거 2개임.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음.


1. 당태종은 보장왕을 책봉했음. 그니깐 당태종은 보장왕을 인정한 것인데 갑자기 어느 순간에 왜 왕을 죽였냐고 따지고 있음.

2. 태종은 보장왕을 요동군왕, 고려왕으로 책봉함. 본인이 요동군왕으로 책봉하고 갑자기 요동은 우리 땅이니 가져가겠다는 모순적인 발언을 함.


 수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신라가 500리를 먹은 적이 있었음. 개소문은 신라를 치려고 했는데 당나라 사람인 상리현장이 말하기를 " 요동의 여러 성에 이르러서는 본래 모두 중국의 군현이었는데, 중국은 오히려 다시 거론하지 않는데 고려는 어찌 반드시 옛땅을 요구한단 말인가"


 상리현장의 논리는 신라를 때리지 말라는 소리지만 잘 들어보면 중국은 다시 거론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함.

당태종의 개전 논리는 당태종의 논리로 완벽히 반박이 가능함.


 즉 사료를 보면 당태종의 침공 이유는 사실 다른 곳에 있으면 개소문과 영류왕 때문이 아닌 순전히 당나라 내부적 문제라는 걸 지금부터 적어볼 거임.



4. 문제는 내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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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 말에 폐태자 사건 등등 태종은 후계문제로 골치를 썩히고 있었음.


 특히 "수나라가 망한 전철은 은나라가 망한 것을 보는 것처럼 멀리 있지 않다" 라는 것을 크게 경계했으며 궁중정변이 터질 것을 우려함. 애초에 당태종부터가 현무문의 변 일으켜서 황제 먹은 놈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그럼.


 이런 거 보면 수문제도 그렇고 수양제도 그렇고 뭔가 뒤숭숭하게 황제 자리 얻은 놈들일수록 더더욱 경계함.

승건이 폐태자가 된 건 643년이고 고구려 침공은 645년임. 

그리고 태종은 이후에도 위왕 태를 계속 세우려고 했지만 대신들이 강력하게 반대했음.


 그 이유는 구당서나 신당서의 기록과 달리 장손황후에서 난 적자가 아니라 서자여서 그렇고 당연하게도 승건 다음 적자인 이치(고종)가 잇는 게 맞다는 이유


 대신들이 논리적이었기에 당태종이 패배하고 이번에는 오왕 각을 태자로 세우려고 한다.

그렇지만 당연히 대신들은 반대하고 결국 태종은 친정을 감행함.


5. 태종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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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들 의견처럼 이치가 황제 먹는 게 맞고 실제로 이치는 꽤 유능한 군주였음.

태종은 고종이 유약하다고 반대했음. 실제로 이는 여러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인약하다, 나약한 그가 사직을 지킬 수 없다 등등 약하다고 생각했음.


 실제로 저부는 지극히 무거운 자리인데 어찌하여 자주 바꾸려 하십니까? 라고 비판할 정도

이대로 가면 이치가 무조건 황제 먹으니깐 고구려 정벌하여 바꾸려고 했던 거.


 마침 당태종 입장에서 고구려는 수나라가 무려 4번이나 침략했는데 뚫지 못했기에 본인이 직접 나서서 뚫으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 수나라가 계속 못 뚫어버리면서 고구려 업적작의 가치가 말도 안되게 높아지게 됨. 


 실제로 당태종 전쟁 준비 기간을 보면 43년 11월에 각의 태자 책봉이 실패하고 44년 2월에 상리현장이 돌아오자 친정계획을 세움. 당연히 대신들의 반대는 극심했으며 찬성하는 자는 이적이 전부였음. 


 똑똑하고 유능한 신하였던 장손무기는 "바둑돌을 들고도 놓지 않으면 지는 것이다. 항차 태자임에랴" 라고 말했으며 당태종은 여전히 이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음.


 안시성에서 패한 태종은 또 다시 47년에 고구려 공격을 중신들과 토론하고 47-48년에 소규모로 공격하고 49년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49년에 당태종이 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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