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외치면서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 이란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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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18:31
본문 6줄 요약
1. 이란은 전쟁을 외쳐 왔음에도 정작 전쟁을 피하려 하고 있다
2. 이는 이란의 정치 체제가 신정이라 그 기반이 시민들의 지지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3. 이란의 실권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은 집권을 위해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했고
4. 그 결과 이란은 이스라엘을 증오하면서 내부 불만과 아랍 세계의 적대감을 해소했다
5. 하지만 이스라엘이 진짜 광기를 보여주면서 이란의 전쟁 운운은 컨셉임이 드러났다
6. 컨셉을 지킬 것인가, 비굴하지만 생존할 것인가 문제에 대해 이란은 생존을 택할 것이다
I. 전쟁을 외치지만 전쟁을 원하진 않는 이란
이란은 매번 수틀리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협박했지만
정작 이스라엘이 '그래 썅년아 나랑 한판 뜨자!' 고 강경도로 나가자
이란은 말로는 보복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부터 일신의 안전이 두려워서 숨어버릴 정도로
전쟁을 외치면서도 정작 전쟁을 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점에 대해 어제 해당 부분을 희화화 하는 글을 올렸었는데,
https://www.fmkorea.com/7529525643
그리고 나서 오늘 새벽에 이란이 이스라엘을 미사일로 공습한 일로
많은 사람들이 '니가 이란 저거 쫄보라고 그랬잖아!' 라고 이야기 하기에
이란의 딜레마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II. 때려 죽어도 하메네이 이스라엘 침공 못하니 안심하십시오
현재 상황에서 이란은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오늘 새벽에 있던 미사일 발사도
지난 4월 이란의 미사일 공격 당시처럼
이번에도 이스라엘의 피해는 경미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란 공식 반응조차
'니들이 때려서 우리가 보복한 거고
니들이 우릴 공격하지 않으면 추가로 공격할 생각은 없다' 라는 점에서
이번 이란의 미사일 공격은
가만 있으면 이란이 동네 호구로 찍히니까
이스라엘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 선에서
'체면 치레' 로 미사일을 날리는 '쇼' 를 한 거다
그렇다면 수틀리면 전쟁을 입에 달고 사는 이란이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는 갑자기 '인내' 의 화신이 되고 마는 것일까?
이는 이란의 신정 국가 정치 체제가
이란 시민들과 철저하게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III. 이란은 어째서 신정 국가가 되었는가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란은 1979년까지만 하더라도
팔레비 왕조가 다스리던 왕정 국가였다
당시 팔레비 왕조는 중동의 유일한 친미 국가로서
상당히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로 유명했었으나
팔레비 왕조의 부패와 무능은
이란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1979년 이란에서는
팔레비 왕조에 반대하는 이란 혁명이 터졌고
당시 파리에 있던 호메이니는
마치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처럼
혁명의 구심점으로 떠오른다
이란 혁명이 성공하면서 팔레비 왕조는 전복되었고
이란 역사상 처음으로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이후 새로운 이란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간에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졌다
사실, 팔레비 왕조에 대한 반감으로 이란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킨 거였지만
혁명 이후 이란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혁명의 구심점이었던 호메이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긴 했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자만으로는 혁명이 성공할 수 없었던 상황이기에
혁명을 위해 공산주의나 민족주의 세력과도 손을 잡은 상태여서
마치 러시아 2월 혁명과 같이 여러 세력이 주도권을 다투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호메이니는
'앞으로 이란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국민투표를 강행하고
공산주의 국가마냥
'모두 다 (신정국가 수립에) 찬성 투표하자' 라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98%가 넘는 찬성율로 신정국가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혁명에 반대했거나,
혁명에 참여했더라도 신정국가 성립에 반대한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거나 기타 딱지를 붙여서 숙청한 뒤,
이란의 국교인 수니파 계열 12이맘파의 교리에 따라
'언젠간 메시아인 마흐디께서 세상에 나타나실 것이니,
그 때까지 우리 이슬람 성직자들이 알라의 뜻에 맞게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
라며 성직자들의 수장인 라흐바르가 마흐디의 대리인으로서
국가를 통치하는 신정 국가 체제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체제는 호메이니 사후 하메네이가 물려받았고
이란은 이렇게 45년 동안 종교 지도자가 실권을 가진 채로 운영이 되고 있다
IV. 이란 시민들이 염증을 내는 신정 국가 체제
흔히 이란 시민들이 순수하고 신앙심이 깊다고 하지만
그거와 별개로 신학자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신정국가 체제를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막말로 이성계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지만
당시 불교계의 폐단을 보고 '숭유억불' 이 국시인 조선을 건국하지 않았는가?
그처럼 이란 시민들도 세상 물정 모르는 성직자들이
나라를 말아먹는다고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잊을 만 하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위는 항상 실패로 돌아갔다
호메이니든 하메네이든 저런 시위대들을
본보기 삼아 잔인할 정도로 처형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종교 지도자들이 보기에는 이란군도 믿을 수 없다고
이란군을 견제하기 위해 '혁명 수비대' 라는 조직을 따로 굴리는 판이라
이란 내부에서 신정 체제가 무너지는 일은
현재로서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란인들은
실권이 없는 바지 사장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선출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도
그나마 개혁적인 성향의 인물로 뽑으면서
오바마 시절에는 미국과 핵무기 포기 대가로
경제 제재 해제와 상호 협력을 얻어내기까지 하였다
물론, 오바마 뒤에 취임한 트럼프가 합의를 파기하면서
다시 없던 일이 되었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란 시민들과, 이란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이란 대통령이
서방과 대화하고 국제사회 복귀를 소망하지만
이란이 근본적으로 바뀌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모택동 말따나마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고 하듯이
이란 종교 지도자가 혁명 수비대를 운용하고 있어서
이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지금 이란의 상황은
근본주의 성직자 지도자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지만
정작 이란 시민들의 민심은
좀 더 자유롭고 세속적인, 세계와 교류하는 정상 국가를 소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잡한 상황이다
실제로 이란 시민들은 종교보다는 민족주의적인 색체가 강한 편인데
호메이니조차 이란 건국 기념행사에서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우상숭배하는 무리라고 비난했다가
이란 시민들이 '개새끼야 우리가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자랑스런 역사 가지고 지랄하지 마라!' 라고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호들짝 놀라서 사과했던 걸 생각하면
이란이 아무리 신정 국가여도 이란 시민들까지 꼴통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V. 내부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증오 수출' 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란 신정 체제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란 종교 지도자가 시민들에 의해 선출되는 자리가 아니다보니
시민들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즉각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이런 내부의 불만이 쌓이다 보면
제 2의 이란 혁명이 터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이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불만을
'외부의 적'인 이스라엘에게 돌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물론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는 수법은
옛날부터 해오던 유서 깊은 방식이고
이슬람 세계에서도
이미 사우디 아라비아가 국시인 와하비즘으로
수도 없이 양산된 광신도들을 처리하기 위해
광신도들을 해외로 내보냈던 건 유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9.11 테러에도
사우디 정보국의 비공식 요원들이 개입되었다는 정황들이 나오는 판이니까
이런 점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에 죽음을!' 이라고 외치는 것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다만 이란의 증오 수출은
자국 내 불만 해소 뿐만 아니라
이슬람 세계에서 이란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란은 원래 중동 세계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인종적으로 아랍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 주류였던 데다가
다른 이슬람 세계가 수니파가 주류였던 반면
이란은 시아파, 그 중에서도 12 이맘파가 주류였던 나라였다
이러다보니 과거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분명히 선빵은 이라크가 쳤는데도
아랍 세계에서 오히려 이라크 잘한다고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이 이라크를 지원했을 판이었다
당시 이란은 어떻게든 침공을 막아내고자
시골의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니들은 천국으로 가고 싶으냐?' 라고 꼬신 다음
전쟁터에 아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침략자인 이라크군도 기겁할 행태를 보여주었고
이란은 결국 이라크군에게 점령당한 지역들을 수복하고도
이라크를 박살낼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며 8년간 끌어오다
1988년 이라크군이 마지막 도박으로
이란 테헤란에 남아있는 스커드 미사일들을 쏟아 붓는 공습을 하고 나서야
이란 수뇌부들이 전쟁의 참상을 체감하고
'전쟁 이전의 국경선으로 복귀' 하는 평화 협상을 맺었을 정도다
이 전쟁은 이란에게
아랍 세계가 수틀리면 언제든지 이란을 침공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주었고
실제로 위키리크스 문건 폭로 당시
아랍 국가들이 미국에게 이란을 침공해달라는 문건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란의 공포감은 근거 없는 게 아닐 것이다
그 점에서 이란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아랍 세계의 공통된 적인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정책을 펴왔다
이란이 잊을만 하면 이스라엘을 침공하겠다느니
이스라엘을 핵으로 날려버리겠다느니
이스라엘의 눈엣가시인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지원한 것도
이란이 앞장서서 이스라엘을 적대해야만
아랍 세계에서 이란에 대한 여론을 어느 정도 돌릴 수 있엇기 때문이었다
마치 사회에서 도태된 여성들이
자신이 여성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곳이 페미니즘 시위 뿐이라
그렇기에 페미니즘 전위대로 활동하듯
이란 역시 아랍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자국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스라엘 때리기' 에 앞장서 왔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이란은 이 전략으로
국제 사회에서 '불량 국가' 이미지가 박히긴 했어도
최소한 이란의 신정체제는 45년간 무사히 유지될 수 있었기에
호메이니와 하메네이는 권좌에서 쫒겨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이란 시민들의 삶은 경제 제재로 파탄났지만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서 시민들의 민생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이란을 때리면서 재미를 톡톡히 보았고
이러한 '적대적 공생' 관계는 영원히 유지될 것처럼 보였다
VI. 판을 깨려는 네타냐후와 이란의 딜레마
지금까지 이란과 이스라엘은 서로를 증오하면서
자기들의 지지 기반을 확고하게 닦아나가면서 재미를 보았지만
또라이 그 자체인 네타냐후가 집권하면서
서로간에 암묵적으로 형성되어 온 적대적 공생 관계가 끝났다
비록 이번 전쟁은 하마스가 선빵을 친 게 맞지만
미국조차도 '야 니들 이겼으니 적당히 하자' 라는 상황에서
네타냐후는 아예 이 기회에
이스라엘을 적대하던 세력들을 족치려고 작정했기에
계속해서 판을 키우고 있다
요즘엔 팔레스타인을 넘어서 레바논까지 침공하며
'누구든 우리 이스라엘을 방해하는 세력들은 다 족치겠다' 며
이에 대해 이란이 경고하자
'그래서 니들이 뭘 할 수 있는데?' 라며
수틀리면 이란과 한 판 뜨겠다는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이란은 이 글 첫 부분처럼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침공할 수 있다고 협박으로 맞대응 했지만
이스라엘이 대놓고 이란 수도 테헤란에다 미사일을 쏴서
하마스 지도자를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였을 뿐더러
헤즈볼라 지도자 역시 한 방에 골로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니들이 목숨이 누구에게 달린 줄 아냐?' 라고 무언의 협박을 하자
이란 종교 지도자 하메네이가 말로는 보복하겠다고 했음에도
본인부터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을 정도로
이란이 그 동안 재미를 보았던 미치광이 전략이
진짜로 분노조절장애 미치광이가 아니라
단지 자기네 권력을 위한 컨셉이었을 뿐임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란이 저렇게 이스라엘이 선을 넘은 상황에서
대응 자체를 하지 않으면 이란이 우습게 보일 판이라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날리긴 했지만
이란 종교지도자와 그 추종자들 입장에선
가만히 있으면 안락한 권력을 변함 없이 누릴 수 있는데
굳이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해서 처참히 몰락하고 싶지 않기에
지난 4월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날렸을 때 대부분의 미사일이 요격당했음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미사일을 날려 보냈고
요격되지 않은 미사일들도 인구 밀집지역을 피해서 날렸기에
이스라엘의 인명 피해는 극히 미미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란 혁명 수비대는 발사 직후
'이스라엘이 보복하지 않는다면 추가 공격은 없을 것' 이라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즉, 이란은 체면 치레로 가만히 있으면 동네 맛집처럼
개나 소나 이란을 우습게 보고 찔러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마지 못해서 미사일을 쏘았다는 걸 본인 스스로도 인정한 상황이다
VII. 이 글을 맺으며
하메네이와 그 추종자들은 지금 딜레마에 처해 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외부의 적에게 증오를 돌려야 해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죽음을!' 이라고 재미를 보아왔었는데
정작 이스라엘이 '진짜로 누가 죽는지 사생결단 내볼까?' 라고
이란보다 더 한 광기를 보여준 상황에서
이란은 지금까지 보여준 게 컨셉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대규모로 보복하자니
전면전이 벌어지면 자신들의 권력과 안위가 박살날 판이고
그렇다고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의 깽판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지금까지 이란의 행동들이 컨셉이었다는 게 까발려질 판이다
하지만, '개똥 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
'살아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 는 말처럼
하메네이와 그 추종자들은
이란의 체면이 망가지더라도
'우리는 인내심...이.... 많... 다....' 고
이스라엘을 대규모로 보족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많은 이란 시민들이 희생되겠지만
애초에 이란 시민들을 생각한다면 나라가 국제 제재를 받고
경제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게 만들지 않았겠지
아마 하메네이와 그 추종자들은 이란 시민들의 희생이 아니라
자신들이 처참하게 몰락하는 게 두려워서
이스라엘의 광기에 맞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이란이 이딴 나라가 되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슬프다